양성평등교육포털 공감
닫기
교사연수자료
공감소식 뷰페이지 입니다.
창작자의 고통은 그럼에도 달다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1-12-02

    등록된 파일이 없습니다.

  여류. 한때는 우리 사회의 여성 창작자들을 여류라 불렀습니다. 여류 시인, 여류 작가, 여류 화가. 수많은 여류가 존재했지요. 그냥 화가, 작가, 시인, 소설가라고 불렀어도 충분했을 텐데 여성의 존재가 조금은 의외였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던가 봅니다. 여성이 직업적인 예술가나 작가와 같은 창작의 영역에서 조금은 예외적인 존재였던 시절. 바로 그래서 여성을 ‘특별한’ 창작자로 여긴 결과. ‘여류’의 탄생기입니다. 여성 창작자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닌 지금은 더 이상 안 쓰이는 말이 되었지요.

 

  우리 문학이건, 서구의 문학이건, 문학의 역사에서, 분명 소수이기는 하지만 여성 작가들의 존재는 그래도 꾸준히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서구 문학의 뿌리,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Sappho)」는 호메로스 같은 엄청난 영향력을 당대에 이미 획득한 존재였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읊어 그리스 문학사에 독보적인 자취를 남겼습니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통해 영웅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노래했다면, 사포는 개인의 내면에 담긴 정서, 살아 숨쉬는 듯한 열정을 노래했습니다. 개인의 감정으로부터 포착된 장르, 「서정」의 영역을 개척해낸 시인임에 분명합니다.



사포라 불린 여인, 로만 프레스코, 나폴리 고고학박물관(퍼블릭 도메인)

 

  위대한 소설가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 「제인 오스틴」도 역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지요.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와 같은 작가들의 반열에 오른 제인 오스틴은 ‘결혼, 낭만적 사랑’이라는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숙한 이야기 틀에 날카로운 관찰력과 재치로 사회와 인간관계,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과 통찰을 담아낸 작가로 평가되고는 합니다. 얼핏 온통 결혼과 사랑 이야기뿐인 듯한 오스틴의 소설이 실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담긴 위선적 측면에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많은 비평가가 동의합니다. 결코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풍자,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꼼꼼히 다 하고야 마는 오스틴 소설의 주인공들은 오늘날에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통찰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겠죠.  



 


  영미 문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 디킨슨 역시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천재적인 시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위대한 창작자입니다. 사랑과 이별, 죽음, 영혼의 이야기를 특유의 명료한 대비, 함축적인 언어에 담아냈지요.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못해서 안타깝지만, 외로움 속에 외출도 하지 않고 살아가던 와중에도 당대의 지식인, 문호들과 교류하며 2,000편에 달하는 명시들을 남겼습니다. 세상을 떠난 후 동생이 디킨슨의 시를 모아 시집을 내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문학사의 작가 중에도 많은 여성 창작자들이 존재하지만, 박경리 선생이 먼저 떠오릅니다. 우리 근대사를 생생한 인물들의 삶, 목소리로 엮어낸 「토지」는 다시 나오기 힘든 대작임이 분명합니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기를 관통하며 우리 근대를 뜨겁게 살아간 경남 하동 최참판댁 일가를 둘러싼 인물들이 토지라는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쉽니다.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사람이라는 말에 과장이 없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창조한 최서희는 전체 극의 중심에서 몰락한 가문, 시대적인 부침 속에도 주변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존엄을 지켜내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역사의 격변에 휘말리면서도 엄연한 자의식, 범접할 수 없는 자의식을 간직하며 살아간 평범한 농민들의 삶을 작가는 고고한 필체로 담아냅니다. 

 

  문학의 역사만을 두고 본다면 미술에 비해서는 그래도 여성 작가들의 비율이나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적인 제한, 사회적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창작에 대한 열정을 꺾지 않고 이어간 이들 덕분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 더 확장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여류’를 넘어선 세계, 누구나 원한다면 창작의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세상.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