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학자, 박병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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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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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익숙하지 않은 이름입니다. 역사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 맥락과 배경을 꼼꼼히 찾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이지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은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라는 책의 이름은 접해보았을 것입니다. 정확히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고려시대, 청주목 흥덕사라는 절의 백운화상 경한이라는 승려가 쓴 것을 금속활자로 떠서 만든 다시 만든 서적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로 유출되었다가 1900년 파리 엑스포에서 소개되기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당시의 누구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디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진 책을 다시 발견하고,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로 인정받도록 한 사람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박병선 박사입니다. 박병선 박사가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보다는 필연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가 프랑스 전역의 도서관을 찾아 헤맨 책이 『직지심체요절』은 아니지만, 적어도 조선의 중요한 기록물을 다시 찾아오려는 노력의 끝에 얻은 결과라 필연적인 성과로 불러야 하지 않을지요. 195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를 졸업한 후 1955년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박병선에게 스승 이병도 박사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보도록 당부합니다. 외규장각 의궤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알고 이를 찾아보도록 권한 스승도, 그 뜻을 알고 20년을 찾아 나선 제자도 대단한 분들임이 분명하지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는 정조가 ‘어람용 의궤’를 포함해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외규장각이 있었습니다.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 군대는 여지없이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보물들을 프랑스로 가져갑니다. 이때 5,000여권의 책을 붙태우고, 의궤와 같이 중요해 보이는 책과 은궤는 약탈해갔다고 합니다. 그 이후 행방이 묘연하던 의궤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폐지 창고에서 결국 박병선 박사의 눈에 띄어 발견됩니다. 1967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가 된 박병선 박사는 의궤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우연히 직지심체요절의 존재를 발견해 1972년 이를 널리 알렸고, 1975년 드디어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해 반환 운동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책을 발견하는 것만도 열정과 지식, 안목이 필요한 고된 일이지만, 역사학자로서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임을 증명해낸 과정은 말로 다하기 어려운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학자 한사람의 힘으로 결국 2001년 9월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킨 것을 생각해보면, 그 노력이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을 지경입니다. 외규장각 의궤를 우리나라로 다시 환수해오는 과정은 지난했습니다. 2011년 양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5년마다 갱신되는 영구대여 방식으로 외규장각 의궤 297권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그 소유 국적은 프랑스입니다. 그나마 박병선 박사의 평생을 바친 노력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2022년이 저물어가는 12월, 다시 박병선을 생각합니다. 타국에서 ‘스파이’라는 공격을 받으며, 홀로 역사학자로서, 한국인으로서 열정을 다한 위대한 삶을 다시 읽습니다. 여성이 공부하기도 어려웠던 시절,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고, 학위를 받고, 위대한 발견을 이루어낸 뜨거운 삶 앞에서 새로운 출발을 생각합니다. [부산광역시교육청 성인지개선전문관 강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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