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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보다 행복(공감N소통 성교육 연구소 조아라 대표님)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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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보다 행복

 

조아라

 

 

엄마오늘 학교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하교를 하자마자 아이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학급 임원들은 상장을 준다고 교무실로 다 오라는 거야그래서 얼른 가서 줄을 서있었거든?

근데 나보다 늦게 온 남자 부반장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글쎄뭐라 그랬는데?”

비켜내가 더 높으니깐

 

생각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말도 잘하고 자기주장도 나름 강하고심지어 성교육성평등 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온 딸의 대응이 궁금했다.

 

그래서넌 어떻게 했니?”

기대를 잔뜩 품고 질문을 했더니 너무나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비켜주었어.....쉬는 시간도 다 끝나가고...늦으면 안 되니까....”

 

요샛말로 현타가 왔다.

대체 자타공인 말빨러말괄량이골목대장 딸은 왜 되지도 않은 말에 맥없이 비켜주었을까.

 

그 비밀은 1년 후 둘째의 입학식에서 풀렸다.

첫째 때는 코로나 시국이어서 별도의 입학식이 없었는데 둘째 때에는 학교에서 입학식을 진행했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강사가 아닌 양육자로 학교를 방문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각 아이의 이름이 환영인사와 함께 복도에 죽 붙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교실을 가는 내내 나까지 환대받는 느낌에 기분이 붕 떴다.

이윽고 교실에 도착하자담임선생님께서 자기소개와 함께 가벼운 인사를 주셨고이어 아이들에게 이름이 불리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합시다’ 하는 안내가 이어졌다.

양육자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사진이나 영상을 찍기 바빴다나 역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휴대폰을 켜고 아이가 일어나면 바로 누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데 지금이다!’ 하고 누르면 다른 아이의 이름이 불리고, ‘이번엔 진짜다’ 싶었을 때도 다른 아이의 이름이 불렸다. ‘아니 대체 우리 아이는 언제 부르는 거야?’ 볼멘소리가 가슴 속에서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그도 그럴 것이 폰을 계속 켜둔 채로 잘 나오는 각도로 잡고 있느라 팔에 쥐가 날 지경이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폰을 내리고 가만가만 교실을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나는 무언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가나다순도 아니고키순서도 아니고앉은 순서도 아닌 남녀 순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학급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다 불리고 나서야여자 아이들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학급 임원선거에서도 반장을 뽑은 후엔 남자 부반장을 뽑고마지막으로 여자 부반장을 뽑는다는 것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수학교과에 규칙이라는 단원이 있다.

동그라미네모세모동그라미네모세모동그라미...다음에 나올 모양은?

하는 식이다그렇다반복되면 규칙이 되는 것이다.

 

큰 아이는 그동안 학교에서 꾸준히 반복을 해온 것이다.

남자 다음이 여자라는 순서를.

그래서 내가 더 높으니까 뒤로 비켜” 라는 남자부반장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수긍해버리고 뒤로 물러난 것이다그게 규칙이니까.

 

교육에 있어 제도적인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그렇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을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 엄마가 별 것 아닌 걸로 민감하네 라든가그 선생님 한 명의 실수지 요즘 어느 선생님이 그렇게 해.처럼)

문제는 고의성이 없더라도 반복되면 그것이 규칙으로문화로 무의식에 자리 잡아 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는 여자를 먼저 부르고 남자를 부르자는 등의 납작한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순서가 중요하지 않은 일에 굳이 같은 순서를 반복할 필요가 없으니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면 좋겠다남자도 핑크를 입고 여자도 파랑을 입기보다 어떤 옷을 입어도 놀림 받거나 공격받지 않은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면 좋겠다내가 나라는 이유로 순서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교육은 교과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리고 그 공간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태도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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