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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 교실로, 세상으로(대용쌤)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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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 교실로, 세상으로

대용쌤

 

저학년 학생들은 보통 성별과 관계없이 잘 섞여 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해의 학생들은 낯가림을 하는 것인지 쑥스러워하는 것인지 유독 따로 노는 모습이 보였다. 교실 놀이를 해도 생각만큼 잘 섞이진 않았다. 한 달 정도를 관찰해 본 결과 남학생들의 성 고정관념이 단단해서 누군가가 여학생과 놀고 있으면 사귀냐고 놀리거나 남자는 그런거 안해같은 말들을 자주 사용했다. 우리 학교는 한 학년당 두 반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이다. 50명 남짓한 같은 학년의 친구들을 6년 동안 보게 된다는 말이다. 가뜩이나 작은 학교에서 벌써부터 성별을 나누어 놀면 이 학생들의 세상이 더 넓어질 기회를 놓칠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곤 3월 말부터 성 고정관념 부수기에 돌입했다. 아직은 학교 생활을 1년밖에 하지 않은 학생들이니 빨리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그리고 성별 나누지 않고 모두 잘 어울려 졸업 때까지 더욱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림책을 좋아해 저학년 대상으로는 그림책 수업을 자주 해왔는데 올해의 그림책을 다시 골라보았다. 학생들이 늘 좋아하는 종이 봉지 공주부터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왜 우리 엄마는 매일 출근할까요?’ 등을 함께 읽었다. ‘종이 봉지 공주는 학생들이 늘 좋아해서 그림책 양성평등 수업을 할 때 첫 시작으로 많이 활용하곤 한다. 흔한 용사 이야기에서 단지 주인공만 공주로 바뀐 것뿐인데 새롭고 신선해서 성 고정관념에 금을 가게 만든다.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는 처음으로 치마를 입지 않은 메리라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여성이 바지를 입지 못하는 시대를 상상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왜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들어요?’와 같은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성 고정관념들을 이야기해 보며 메리처럼 나중에는 그런 고정관념들이 없는 것이 더 익숙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우리 엄마는 매일 출근할까요?’는 최근에 추천을 받아 처음 수업해 본 그림책이다. 학생들은 모두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고 시작하지만 이내 출근하는 엄마를 응원해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며 마무리된다. 학생들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노력하는 엄마가 멋있어 보이나 보다.


며칠 뒤 학생들끼리 놀이 중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너는 간호사 해. 간호사는 보통 여자잖아.” 교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먼저 다른 학생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여자도 의사할 수 있어”, “간호사도 남자 간호사 있어!” 질타를 들은 학생은 머쓱해하며 사과하고 역할을 바꾸어 놀이를 이어나갔다. 아이들은 늘 어른들의 예상보다 변화가 빠르다. 지금 이렇게 양성평등에 대해 알아가는 학생들이 10, 20년 뒤에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갈지 즐거운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