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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그리고 폭력예방(이성림님)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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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근무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1년간 수많은 디지털 성범죄를 접하게 되었고 특히나 10대 청소년들의 가·피해 사건을 만나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1년이었다. 피해 학생이나 교사가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부터 사건의 전 과정을 함께 하다 보니 교내에서의 사건 처리 절차 등의 한계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작 학생으로부터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은 교사가 학교에 출근할 수 없는 현실, 피해자가 직장과 일상을 잃어야 하는 광경을 흔하게 마주한다는 점이 항상 놀랍다. 피해를 입은 학생이 버젓이 자신을 불법 촬영하고 허위 영상물을 만든 동급생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고통을 마주하는 것 또한 흔한 일이어서 더욱 괴롭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의 목적을 보면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이라고 되어있다. 교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경우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개최되기까지도 법률에는 21일 이내에 개최하는 것이 원칙이고 7일 이내에서 연장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시험 등 학사일정이 있는 경우 연기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어 개최 시기에 대한 명확한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한 달 이상 소요되는 학교도 있다. 이렇게 사건 발생 후의 조치 제도가 피해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제도가 아니라 학교의 사정을 먼저 고려하는 제도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신고를 접수하면 즉각 대응하도록 되어있지만 즉각 대응이라는 것이 사건 처리 전 과정의 신속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교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가 최대 7일로 정해져 있는데 피해 학생의 보호자들은 평균적으로 3일 정도로만 처분된다고 입을 모은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가해 학생의 잘못을 조사하고 처분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피신고인 역시 보호가 필요하고 학습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문제는 피신고인의 보호가 보장된 제도인 만큼 피해 학생 혹은 피해 교사 역시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해야 할 때이다. 학교폭력 예방법 및 시행령이 신고인의 피해와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는 제도인지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사건의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는데 무조건 신고를 당했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분리하라거나 보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피해를 본 사람의 관점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고민하는 단계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한편, 디지털 성범죄를 일으킨 학생을 악마화하거나 그 학생만 강제 전학시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 여기는 단죄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처벌 수위를 높이면 범죄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여기는 인식 또한 그렇게만 하면 정말 디지털 성범죄가 줄어들 수 있는 문제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해결이 되는 문제라면 해외의 많은 엄벌주의 국가들에서는 젠더폭력이 줄어들어야 하지만 오히려 발생 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다른 세상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관계적 정의가 무엇인지를 잘 배워나갈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고민과 에너지를 쓰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기관, 어느 한 행정부처에 내맡기는 형태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기관, 행정부처 등이 만나 서로의 의견을 모으고 나누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을 함께 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