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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양성평등지수 점검 체크리스트[출처]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 '일로 만난 사이에도 성평등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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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 , . 『』 『』. 『』고려시대청주목 흥덕사라는 절의 백운화상 경한이라는 승려가 쓴 것을 금속활자로 떠서 만든 다시 만든 서적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로 유출되었다가 년 파리 엑스포에서 소개되기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당시의 누구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어디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진 책을 다시 발견하고최고最古의 금속활자로 인정받도록 한 사람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박병선 박사입니다박병선 박사가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보다는 필연에 가까워 보입니다그가 프랑스 전역의 도서관을 찾아 헤맨 책이 직지심체요절은 아니지만적어도 조선의 중요한 기록물을 다시 찾아오려는 노력의 끝에 얻은 결과라 필연적인 성과로 불러야 하지 않을지요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를 졸업한 후 년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박병선에게 스승 이병도 박사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보도록 당부합니다외규장각 의궤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알고 이를 찾아보도록 권한 스승도그 뜻을 알고 년을 찾아 나선 제자도 대단한 분들임이 분명하지요1866‘’. . 5,000, . .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가 된 박병선 박사는 의궤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우연히 직지심체요절의 존재를 발견해 년 이를 널리 알렸고년 드디어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해 반환 운동의 불씨를 당겼습니다책을 발견하는 것만도 열정과 지식안목이 필요한 고된 일이지만역사학자로서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임을 증명해낸 과정은 말로 다하기 어려운 힘든 과정이었습니다학자 한사람의 힘으로 결국 년 월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킨 것을 생각해보면그 노력이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을 지경입니다외규장각 의궤를 우리나라로 다시 환수해오는 과정은 지난했습니다년 양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년마다 갱신되는 영구대여 방식으로 외규장각 의궤 권은 다시 돌아왔습니다여전히 그 소유 국적은 프랑스입니다그나마 박병선 박사의 평생을 바친 노력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년이 저물어가는 월다시 박병선을 생각합니다타국에서 스파이라는 공격을 받으며홀로 역사학자로서한국인으로서 열정을 다한 위대한 삶을 다시 읽습니다여성이 공부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고학위를 받고위대한 발견을 이루어낸 뜨거운 삶 앞에서 새로운 출발을 생각합니다부산광역시교육청 성인지개선전문관 강은수
『다산과 다빈치』라는 제목을 놓고 보니 단 두 페이지의 지면에 이분들의 업적을 정리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아득함이 밀려옵니다. 당연하게도 불가능한 일이지요. 업적을 관통하는 맥락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일입니다. 하지만 제9호까지 달려온 『부산성인지교육웹진』이 이번 이슈에서 제시하려는 메시지에 이분들보다 잘 들어맞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창조자』라는 카테고리가 존재한다면 나란히 선두에 이름을 남길 두 사람입니다. 인문주의 시대를 활짝 연 다빈치가 유럽의 르네상스맨이라면, 조선의 근대를 앞당긴 다산 정약용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시대 정신의 지평을 넓힌 르네상스맨입니다.서로 살다 간 시대는 달랐지만, 예술·철학·수학·천문학·공학·의학·언어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두루 통해 이르지 못하는 것이 없었던 지적역량, 세상의 이치를 추상적으로 탐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귀납적으로 헤아리려 했던 과학자로서의 기상과 열정, 연구한 결과를 모두 정밀한 기록하고 남겨 인류의 자산이 되게 만든 성실성 등 닮은 점을 나열하기에 그 끝이 없습니다.다산 정약용은 유학의 본질로 돌아가, 경세치용의 실질적인 이론을 정립하고자 한 유학자입니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논쟁과 계파의 이익을 위해 끝없이 변질 되어간 유학을 바로 세워 왕조의 정치적인 개혁을 이루고자 시도한 정치가이기도 합니다. 만약 정약용이 귀양을 가지 않고 정치의 세계에 그대로 남았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은 500여 권의 귀중한 저서는 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다산은 당대의 급변하는 세계, 주변국의 사상과 기술을 받아들임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천주교와 서양의 학문에 큰 관심을 가져 민초에게서 국가의 권력이 나온다는 사상, 평등과 인권에 대한 근대적인 시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천주교를 하나의 학문으로서 받아들여 만인 평등이라는 새로운 시대 정신의 창구로 삼았지만 그로 인해 큰 고초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중앙 정치의 소용돌이 안에서도, 18년에 이르는 귀양살이 중에도 다산의 모든 업적을 관통하는 한가지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인본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실사구시적인 발명과 연구, 2500편에 달하는 시편을 통해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인본주의를 발견하게 됩니다.다빈치 역시 위대한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로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직업은 공학자, 외교관, 수학자, 물리학자, 식물학자, 시인, 음악가, 심지어 요리사에 이르기까지 한계를 벗어나 있습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한가지 역시, 중세 시대, 신을 중심에 세운 세상의 구도를 인간으로 이끌어온 ‘인본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세계관의 변혁을 글자 그대로 실현한 인물인 셈입니다.다산과 다빈치의 인본주의가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 인권과 성별로 인한 불평등에 근원적인 관심과 연구를 남겼는지 묻는다면 그 답은 부정적일 것입니다. 다빈치의 해부도나, 『비투루비우스적 인간』은 여전히 남성의 신체를 인간의 신체로 묘사합니다. 다산 역시 평등의 문제에 관해 유교적인 사회 체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다만,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다산은 당대 하층민 여성의 고난을 그린 『도강고가부사』라는 서사시를 남겼고, 다빈치는 『모나리자』에서 성별로 인한 고정관념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물의 개성을 묘사했습니다. 그 묘사 대상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인본주의를 예술로 승화시킨 사례들입니다. 이 역시 두사람을 묶어주는 중요한 공통점일 것입니다. [부산광역시교육청 성인지개선 전문관 강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