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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검색결과 총 330건 입니다.

이달의 성인지 뉴스

검색결과105건
  • 나이팅게일

     

  • 전쟁, 케테 콜비츠

      독일 베를린에는 전쟁피해자를 추모하는 기념관 ‘노이에 바헤’가 있다. 웅장한 기념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피에타’라 불리는 조각상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피에타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어머니 마리아가 껴안고 슬퍼하는 도상을 말한다. 성스러운 모자를 묘사한 수많은 피에타상들이 있으나 ‘노이에 바헤’의 피에타는 성스럽다기 보다 인간적이다. 조각상 위의 천장이 원형으로 뚫려있어 모자상이 고스란히 비와 눈을 맞도록 한 것조차 그러하다.   웅크려 앉은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여윈 몸을 자신의 온 몸으로 감싸안고 한 손은 아이의 이마를, 또 다른 손으로 온기를 잃은 두 손을 사랑스럽게 매만지고 있다. 여인의 얼굴은 투박한 두건으로 가려져 미간에 패인 깊은 주름만이 그녀의 고통을 전한다. 생명이 사라진 자식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깊은 통증이 고요한 공간 가득 소리없이 울려퍼지고 있다. ‘내 아이야…!’ 아들의 주검과 하나된 어머니의 청동상은 어떤 말도 대신할 수 없는 말로 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전한다.  아이를 잃은 여인은 조각을 만든 작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품을 만든 케테 콜비츠의 아들은 1차대전 중 자원입대하여 열여덟의 나이로 전사했다. 참전한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   케테 콜비츠는 1867년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부유하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일찍 예술을 접하였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문적인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없었다. 1889년 베를린에 가서야 여자예술학교에 입학하여 판화와 회화를 배웠다. 결혼 뒤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진료하는 의사였던 남편 칼 콜비츠를 따라 빈민가에서 생활했는데 이 경험은 콜비츠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케테는 노동자들의 삶을 알게 되면서 특히 노동자 계급의 여성이 처해있는 현실에 분개했다. 여성들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고 그나마도 건강하고 임신하지 않았을 때야 가능한 일자리였기에 불법적인 임신중절이 흔하게 행해졌다. 케테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운명에 연민을 느꼈으나 작품 속에서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삶에서 보여주는 역동성과 소박한 숭고함에 주목했다. 1903년 그녀의 대표작 <폭발>은 저항하는 농민들을 이끄는 여성의 뒷모습을 긴장감 가득한 필치로 묘사하여 억눌려있던 이들의 열정과 시대를 선도하는 힘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1910년대 그녀가 만든 <직조공들>, <농민전쟁> 판화 시리즈는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아름답고 강렬하게 묘사했다. 케테는 예술이 예술가의 스튜디오를 넘어서서 보다 광범위한 사람들과 만나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1914년 7월 1차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의 전쟁들은 대부분 짧고 전투 한두번으로 종결되었기에 사상자도 적고 피해도 적었다. 사람들은 이번 전쟁 역시 마찬가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은 산업혁명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이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기를 만들어냈고, 그 발전이 전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지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참혹한 전쟁이 이제야 막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1914년 10월 30일 케테 콜비츠의 일기에는 단 한줄만이 적혀있다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그의 세상을 흔들었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대의를 위한 싸움을 고귀하게 표현했다면 이제 다른 질문이 그의 그림에 등장한다. ‘과연 고귀한 희생이란 존재하는가’ 그는 오랜시간 자신의 슬픔을 녹여 <전쟁>연작 시리즈를 만든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더 이상 누구도 전사해서는 안된다.’ <지원병들>에서는 해골모습의 병사, 우는 병사 등으로 무의미하고 절망스러운 전쟁의 모습을 표현했고, <과부>, <부모> 등의 작품에서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와 연관된 사람들의 슬픔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전한다. 1934년 독일에 극우적인 나치정부가 집권한 뒤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전쟁은 이제 그만>과 같은 작품을 통해 반전과 평화를 향한 목소리를 높였다.     나치 정권은 그녀의 반전 미술이 전시되는 것을 금지시켰고 공개된 자리에 참석하는 것도 막았다. 강요된 침묵 속에서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1937년 모두의 아들을 위한 진혼곡과 같은 ‘피에타’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2차대전이 일어났다. 그녀는 다시 아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손자 페터를 폴란드 전선에서 잃었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유언과 같은 작품을 남기며 말했다. “‘씨앗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명령이다. 요구다.”  그림 속 한 늙은 여인이 망아지처럼 바깥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소년들을 숨기고 그 위로 팔을 힘있게 뻗친다. 케테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작품 속 여인들처럼 가녀린 생명을 보호하고 세상을 힘차게 끌어안으며 떠났다.  문현여자고등학교 교사, 작가 이서연

  • 나나, 기쁨을 노래하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앞에는 조각들이 물 위를 빙글빙글 돌며 물을 뿜는 ‘스트라빈스키의 분수’가 있다. 경쾌한 색깔로 묘사된 방울뱀, 빨간 하트 그리고 거대한 여성의 몸이 물을 뿜어내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발랄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사한다. 가슴과 엉덩이가 과장되게 묘사된 여성은 ‘날씬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낙천적이고 행복해보인다. 이 조각을 만든 프랑스 예술가 ‘니키 드 생팔’은 자신이 만든 새로운 여성상을 시리즈로 만들고 이를 ‘나나’라고 불렀다.  니키 드 생팔의 ‘나나’ 시리즈는 하얀 피부와 금발이라는 전형적인 서구 미인의 기준을 무시한다. 그녀들은 검은 피부이거나 녹색, 분홍색 등 각양각색이고 아예 눈, 코, 입이 없는 경우도 많다. 나나들은 오동통한 몸매로 하늘을 날고, 춤을 추고,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는 등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몸짓을 선보인다. 한 눈에 봐도 활기차고 사랑스럽다. ‘인형 같은 얼굴, 날씬한 몸매가 아니 라도 나는 이 몸을 사랑하며, 여기 내 삶을 살고 그래서 행복하다’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전형적인 금발 미녀였던 예술가 니키 드 생팔이 이토록 해방감 넘치는 ‘나나’를 만든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니키는 부유한 프랑스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11세에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나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억누르며 비밀을 지켜야했다. 성장기 잦은 문제행동으로 퇴학과 전학을 반복하다가 18세에 이른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의 바람기로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을 하다 날씬한 몸매와 외모에 대한 강박이 심해져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시기에 치료의 일환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 중 최초로 국제적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 ‘사격회화’다.  사격회화는 캔버스 위에 물감주머니를 달고 그 위를 석고로 바른 뒤 총으로 쏘아 물감을 터뜨리는 것이다. 물감이 터진 캔버스는 마치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하는 것 같다. 사격을 할 때 그녀가 캔버스 위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했던 위선적인 세상에 대한 분노? 날씬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좌절감? 그 무엇이었든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에서 억눌렸던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하고 고통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사격회화 이후 한층 자유로워진 니키는 나나 시리즈를 만들었다. 임신한 친구를 모델로 크고 풍만한 몸매를 가진 나나가 탄생한 것이다. 뚱뚱하고 분방한 모습의 나나는 기존의 관념화된 미의식으로 정의될 수 없는, 살아있는 여성들의 수 만큼이나 다채로운 사랑스러움에 대한 찬가다. 나는 나이기에 이미 충분해라고 말하는 ‘나나’다.  니키의 성장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직면하고 자하는 용기와 자기사랑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주위로 확장되었다. 이혼 후 만난 연인 장 팅겔리는 평생의 예술 동지로서 그녀를 지지해주었다. 그들은 앞서 본 스트라빈스키 분수와 28미터 길이의 거대한 설치미술 Hon(성당) 등을 함께 완성했다. 또한 니키는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미술이 주는 기쁨과 삶의 지혜를 나누기를 원했다. 예루살렘 빈민가에 세워진 그녀의 작품 ‘Golem’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예술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이 즐겨 찾는 놀이마당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기리고 있다. 문현여자고등학교 교사, 작가 이서연

  • 부산교육청, 성인식개선 및 성폭력예방추진계획 수립·시행

    ○ 부산광역시교육청(교육감 김석준)은 학교 공동체의 성인식개선과 공정하고 전문적인 성사안처리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2021년 성인식개선 및 성폭력예방추진계획’을 수립, 시행한다고 4일 밝혔습니다.   ○ 이 계획은 ▲상급성고충심위원회 일괄 개최와 학교 내 성사안처리를 위한 전문가 지원 등 성폭력예방 및 사안처리체계 강화 ▲인권·관계중심 학생 성교육 및 성인지 향상을 위한 웹진 개발 ▲학교공동체 성인식 개선을 위한 교직원과 학부모 대상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 개발 등을 담았습니다.   ○ 상급성고충심의위원회는 부산시교육청 소속기관 기관장 등 관리직이 연루된 성사안을 심의하기 위해 총 8명의 위원으로 구성, 운영합니다.   이 위원회는 변호사와 성사안처리 전문가 등 외부전문가 위원 50% 이상으로 구성해 성희롱 여부, 피해자 보호, 2차 피해 방지 및 재발방지 대책 등을 심의합니다.   ○ 단위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는 학교 구성원 간 성비위 사안을 심의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 재발방지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총 6명의 위원으로 구성, 운영합니다.   특히 학생과 교직원간 성비위 사안이 발생한 경우 기존 외부전문가 위원 수를 2명에서 3명으로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부산시교육청은 단위학교의 성비위 사안 처리를 지원하기 위해 성인권시민조사관과 변호사, 공인노무사, 성사안 전문상담원 등 인력풀을 구성하여 사안 발생 시 외부 인력 1인을 지원합니다.       

  • 성교육 및 성폭력예방 전담기구인 성인식개선반 신설·운영

    ○ 부산시교육청은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성교육 및 성폭력예방 전담기구인 ‘성인식개선반’을 신설, 학교내 성사안처리지원체계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 이 가운데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1월 성교육 및 성사안처리지원을 총괄하는 성인식개선반을 신설하여 성교육 교육과정 및 콘텐츠 개발, 성인지교육 실시, 성인권시민조사관 운영 등을 전담합니다. 특히, 성교육전문가인 성인식개선담당관을 두어 성교육 교육과정 및 콘텐츠 개발, 대상자별 성인지향상 연수 등 학교 내 성인식 개선을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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