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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힘, 레이첼 화이트리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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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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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미술작품을 보는 것은 당신을 다른 장소로 이끈다 일상을 향상시키고, 시대를 돌아보게 하며,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레이첼 화이트리드
수많은 예술가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예술작품에서 묘사해왔다. 그것은 상상 속 괴물을 묘사한 중세 태피스트리일 수도 있고, 터질 듯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과감한 색으로 표현한 현대 추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천년의 미술사에서 빈 공간을 실체로 만든 작품은 1988년 한 여성에 의해서였다.
만질 수 있는 형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창조해내는 신선한 발상, 소외된 것들, 잊혀지고 핍박당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근원적인 관심. 그 관심의 한가운데 사람에 대한 애정, 인권에 대한 호소가 있다. 이런 것들이 레이첼 화이트리드를 특별한 미술가로 만드는 요소들이다. 작가적 시선으로 건축을 직접적인 서술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이나 건축의 요소들-거푸집, 강인한 직선과 거대한 질량을 통해 메세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얕은 숨 Shallow Breath>, 생의 마지막 숨결을 보이게 하다. 영국의 조각가 레이첼 화이트리드는 1988년 첫 개인전에서 ‘공간’을 거푸집 삼는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다. 집에서 보는 일상적 소재를 다루되, 눈으로 보이는 겉면이 아니라 그 속을 외부로 드러낸 것이다. 이 전시에서 발표된 ‘얕은 숨(Shallow Breath)’ 역시 침대 매트리스와 바닥 사이의 좁고 어두운 공간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위해 작가는 전시가 있기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썼던 침대의 매트리스 아래에 들어가 본을 떴다. 그리고 얕은 숨이라 명명한다.
우리는 이 뭉툭한 사각 덩어리 앞에서 임종의 순간, 마지막 숨이 아버지의 병든 몸을 얕게 스치며 지나갈 때, 함께 가늘게 흔들렸을 그 매트리스와 아래 어둑한 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소중한 이의 마지막 숨결이 스며들어 있는. 그리고 깨닫게 된다. 작가가 보이게 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공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이며 그 시간의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을.
<집 House>, 집이 놓인 사회적 맥락을 보이게 하다. 이후 그녀의 작품은 점 점 규모가 커지고 건축적인 형태를 띄었다. 1993년 발표한 ‘집(House)’에서 그녀는 3층짜리 주택 전체를 거푸집으로 사용하여 내부에 콘크리트를 붓고 건조시킨 다음 틀이 된 주택을 해체했다. 주택의 내부공간은 고스란히 작품으로서 외부에 드러내졌다.
거푸집으로 사용된 집은 산업혁명기에 런던 동부에 조성된 빈민가 주택 중 하나였는데 지역 전체가 재개발되는 가운데 집주인의 반대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집이었다. 집주인 시드 가일은 정부의 무작위적 개발에 반대하여 집을 지키고 있었고 이를 알게된 레이첼이 가일과의 협의하에 집을 작품화한 것이다. 재개발 계약에는 주택을 철거하라는 내용만 있을뿐 주택내부 공간에 대한 내용이 없는 점을 이용하여 법이 요구하는 주택철거를 함과 동시에 콘크리트로 내부공간을 남겨 난개발에 저항하는 상징적 조형물을 만든 것이다.
이후 영국사회에서는 이 콘크리트 구조물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작품으로 두고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부술 것인지 찬반논의가 지역 재개발과 함께 이슈가 되었다. 그 사이 수천 명의 관람자가 지역을 찾아왔고,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기에 이른다. 많은 남성작가들의 건축적 조각들이 웅장한 규모와 구조를 통해 권위적이고 압도적인 힘을 내재화한 반면 화이트리드는 견고해보이는 건축물 외형 안에서 약하고 무너져가는 것들을 있음을 드러내고 까발린 것이다. 결국 1993년 8월 ‘House’는 재개발을 위해 부수는 것으로 결정되었지만, 그 결정이 이루어진 날 화이트리드는 여성 최초로 영국 미술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터너상을 수상한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레이첼 화이트리드 작, 사진: Hans Peter Schaefer, CC BY-SA 3.0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세계는 다시금 시대를 조망하는 길로 나아갔다. 1995년 비엔나 유태인 학살 기념관 공모에 당선되어 5년만에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낭만적인 비엔나의 거리에 세워진 학살 기념관은 투박하기 이를데 없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에는 창도 없고 문이 있으나 문고리가 없다. 들어갈 수 없는 건물이다. 벽은 거꾸로 돌려진 책이 빽빽이 꽂힌 모습이다. 그래서 일명 이름없는 도서관이라 불리운다. 왜 책이었을까? 왜 도서관이었을까? 수백만명의 죽음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건물의 이 고요함과 침묵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눈 앞의 비극을 가능케 했던 수많은 이들의 침묵일까?
책이 있으되 읽을 수 없고, 건물이 있으나 들어갈 수가 없는 도서관은 수천년 쌓아올린 인류 지식과 지혜가 눈먼 증오와 야만 앞에 무릎꿇었던 시대에 대한 은유이며 경고다. 레이첼은 보이지않는 것을 너머 보지 않으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녀에게 있어 보는 것은 눈이 아니다. 마음이며 선택이다.
『둑』, 2005, 레이첼 화이트리드 작, 사진: Fin Fahey, CC BY-SA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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