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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기쁨을 노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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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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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앞에는 조각들이 물 위를 빙글빙글 돌며 물을 뿜는 ‘스트라빈스키의 분수’가 있다. 경쾌한 색깔로 묘사된 방울뱀, 빨간 하트 그리고 거대한 여성의 몸이 물을 뿜어내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발랄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사한다. 가슴과 엉덩이가 과장되게 묘사된 여성은 ‘날씬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낙천적이고 행복해보인다. 이 조각을 만든 프랑스 예술가 ‘니키 드 생팔’은 자신이 만든 새로운 여성상을 시리즈로 만들고 이를 ‘나나’라고 불렀다.
니키 드 생팔의 ‘나나’ 시리즈는 하얀 피부와 금발이라는 전형적인 서구 미인의 기준을 무시한다. 그녀들은 검은 피부이거나 녹색, 분홍색 등 각양각색이고 아예 눈, 코, 입이 없는 경우도 많다. 나나들은 오동통한 몸매로 하늘을 날고, 춤을 추고,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는 등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몸짓을 선보인다. 한 눈에 봐도 활기차고 사랑스럽다. ‘인형 같은 얼굴, 날씬한 몸매가 아니 라도 나는 이 몸을 사랑하며, 여기 내 삶을 살고 그래서 행복하다’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전형적인 금발 미녀였던 예술가 니키 드 생팔이 이토록 해방감 넘치는 ‘나나’를 만든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니키는 부유한 프랑스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11세에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나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억누르며 비밀을 지켜야했다. 성장기 잦은 문제행동으로 퇴학과 전학을 반복하다가 18세에 이른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의 바람기로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을 하다 날씬한 몸매와 외모에 대한 강박이 심해져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시기에 치료의 일환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 중 최초로 국제적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 ‘사격회화’다.
사격회화는 캔버스 위에 물감주머니를 달고 그 위를 석고로 바른 뒤 총으로 쏘아 물감을 터뜨리는 것이다. 물감이 터진 캔버스는 마치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하는 것 같다. 사격을 할 때 그녀가 캔버스 위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했던 위선적인 세상에 대한 분노? 날씬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좌절감? 그 무엇이었든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에서 억눌렸던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하고 고통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사격회화 이후 한층 자유로워진 니키는 나나 시리즈를 만들었다. 임신한 친구를 모델로 크고 풍만한 몸매를 가진 나나가 탄생한 것이다. 뚱뚱하고 분방한 모습의 나나는 기존의 관념화된 미의식으로 정의될 수 없는, 살아있는 여성들의 수 만큼이나 다채로운 사랑스러움에 대한 찬가다. 나는 나이기에 이미 충분해라고 말하는 ‘나나’다.
니키의 성장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직면하고 자하는 용기와 자기사랑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주위로 확장되었다. 이혼 후 만난 연인 장 팅겔리는 평생의 예술 동지로서 그녀를 지지해주었다. 그들은 앞서 본 스트라빈스키 분수와 28미터 길이의 거대한 설치미술 Hon(성당) 등을 함께 완성했다. 또한 니키는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미술이 주는 기쁨과 삶의 지혜를 나누기를 원했다. 예루살렘 빈민가에 세워진 그녀의 작품 ‘Golem’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예술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이 즐겨 찾는 놀이마당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기리고 있다.
문현여자고등학교 교사, 작가 이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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