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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양성평등 현장지원단 연수 강의를 하고 돌아온 날('언젠가'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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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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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양성평등 현장지원단 연수 강의를 하고 돌아온 날 언젠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 인생은 그리 가혹하지 않다. 멀리 보고 길게 보면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 멀리 길게 볼 힘이 없다. 강의를 하고 돌아온 날도 그렇다. 작년에 했던 교육청 공모 사업의 성과가 어떻게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그 일을 할 때 정말 즐겁게 진심을 다 해서 했더니 성과가 이렇게 나타나는지 타 지역 여성재단에서 강의 제안을 받았다. 현장에서 양성평등 수업을 하고 교육 하던 걸 공유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일상이 힘들고 심신이 지쳐 고사하고 싶었지만 문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 일이 참 좋은데?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타인에게 내가 하는 일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나는 학교에서 양성평등 교육과 성교육을 하고 있는 담당자이다.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나 혼자의 노력, 내가 내는 소리가 너무나 작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강의를 하기 전에 긴장과 불안이 들어 청심환도 먹었다. 하지만 결국, 그냥 내가 했던 일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가감없이 이야기 하는 것 만으로도 이 연수의 대상자인 연수 신청자들에게는 의미 있는 연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걱정했던 것보다 강의는 잘 마쳤다. 그런데 강의 때문에 퇴근이 늦어졌다. 나는 퇴근하면 다시 육아 출근을 한다. 허둥지둥 출근을 하고 퇴근하고 나면 급하게 아침에 미뤄놓은 설거지를 하며 동시에 저녁을 차려 아이를 먹인다. 아이는 나와 저녁 식사를 한 후에 학원으로 향하고 아이가 저녁에 학원에 가서 한 두시간 수업을 듣는 사이에 나는 내일을 위해 가사 노동을 시작한다. 아마도 보통의 일하는 엄마의 일과는 나와 같지 않을까? 그날, 하교 후 집에서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이의 저녁을 챙겨주고 학원을 보내려고, 아이의 입에 밥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해 퇴근 했지만, 아이는 결국 저녁을 못 먹고 학원 시간에 맞춰서 나갔다. 물론 아이는 엄마가 왜 늦냐?, 나 배고프다, 엄마가 없으니 초콜릿 먹고 갈 거다, 하는 불만과 투정을 늘어놓고 장문의 카톡 폭탄을 남겼다. 그리고 자기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평소에 먹고 싶었으나 엄마가 못 먹게 했던 인스턴트와 배달 음식을 대령해 달라고 했다.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고,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지만 나의 몸은 하나뿐이다. 엄마가 밖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내 아이에 대한 돌봄은 부재중이될 수 밖에 없다. 이게 현실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양성 평등한 사회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그녀들이 사회에 나갈 때는 일과 가정 양립이란 말이 구호가 아니길 바란다.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것만큼, 유료 도우미 혹은 양가 조부모들의 손길 조차 구할 수 없는 엄마가 아이를 낳아 키우며 일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대책없는 것인지 뼈져리게 경험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 비록 나는 일도 육아도 가사도 모두 다 감당하며 하루하루 허덕이며 찌들며 살아가는 워킹맘이지만, 한 가지 희망은 내가 이렇게 힘들게 키워내는 아이는 자랄 것이고 그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어른이 된다면 내가 살아온 것보다는 조금 더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편안한 일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왜냐면 내가 지금 그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퇴근길에 본 노을은 참 아름다웠다. 그 모습이 나를 위로해 주고 앞으로 나아가라 격려해 주는 느낌이었다. 강의를 하느라 긴장한 탓에 아드레날린 폭풍이 지나갔는지 집에 오니 맥이 탁 풀리고 꼼짝도 하기 싫었다.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고 싶지만 그래,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아이가 평소에 먹고 싶다고 조르던 기름지고 짜고 맛있는 배달 음식을 야식으로 먹고 맥주도 한 캔 해야겠다. 나는 몸이 두 개가 아니다. 모든 걸 다 잘하려고 하는 순간 탈이 난다는 걸 안다. 엄마가 일한다고 건강한 반찬을 만들어 먹이지 않고 아이에게 음식을 사서 먹인다고 죄책감을 심어주던 타인의 참견은 더 이상 나에게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엄마가 직접 좋은 재료를 엄선 하여 모든걸 다 만들어 먹이지 않아도 아이는 건강하게 잘 클 수 있다. 아이가 학원에서 오면 비록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함께 느긋하고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며 엄마가 오늘 왜 퇴근이 늦었는지, 왜 너의 저녁을 챙겨줄 시간이 없었는지 이야기해 줘야겠다. 내 아이는 아마도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